음유시인 정태춘의 낭만적인 첫 독집
고집스럽게 지켜온 자신만의 음악세계
1970년대 후반 서정적인 포크송으로 풍요로운 인기를 누렸던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태춘은 돌연 박수 대신 구호가 난무했던 집회에서 세상의 아픔을 토해내는 민중가수로 돌변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팍팍한 세상의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으로 일관되었던 정태춘은 변혁 지향 노래에서 점차 벗어나 일상적인 삶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음악적 화해를 토해 포크음악의 지평을 넓혀왔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는 고향의 정서를 푸근하게 그려낸 서정성은 물론이고 세상의 아픈 현실을 껴안은 치열한 가락과 노랫말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다.
창작욕을 옥죄었던 부당한 심의
데뷔 음반부터 가해진 '공륜의 심의 보류 조치'는 정태춘의 창작욕을 옥죄었다. 타이틀곡 [시인의 마을]은 1978년 6월 19일 공윤 심의에서 개작 조치를 받았다. '오리지널 시의 확인을 위해 심의 보류'라는 이유였지만 이 곡은 정태춘의 창작품이었다. 결국 "확인 결과 시작과 연결 없는 대중가요 가사로는 방황, 불건전 요소가 짙어 부적절하다고 사료됨으로 전면 개작 요망함'이라는 처분을 받았다. 이에 제작사 사장은 가사의 여러 부분을 임으로 수정해 심의를 통과시켰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는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로,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는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로, '텅빈 가슴'은 '부푼 가슴'으로,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은 '맑은 한줄기 산들바람'으로 변경되었다가 훗날 복원되었다. [사랑하고 싶소]도 첫 심의에서 '내용이 너무 직설적이고 통속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재심에서는 수정 조치 없이 통과되었다. 이후 1988년 6집 '무진 새 노래'까지 정태춘은 전면 개작 지시 10곡, 부분 개작 지시를 20여 곡이나 받으며 고통받았다.
주류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아웃사이더
대중취향의 달콤한 곡들로 구성된 이 앨범은 빅히트를 기록했다. 신인여가수 박은옥과의 연애는 인생의 달콤함을 만끽하게 했다. 하지만 음악보다는 '명랑운동회'등 지상파 TV의 오락프로 출연을 강요하는 인기가수생활은 그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단숨에 인기가수로 떠올랐지만 정태춘은 화려한 주류 대중음악계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아웃사이더의 이미지가 강력했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앨범 이후 정태춘은 인기보다는 자신만의 색채가 또렷한 음악에 집착하며 주류가요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체질적으로 연예인의 '끼'보다 예술혼이 꿈틀거렸던 그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민중가수로의 변신은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방황과 상념을 담은 이 앨범은 공륜과 지루하게 벌였던 투쟁의 서막이었다. 한국 포크음악계의 독보적인 싱어송라이터 정태춘의 음악여정은 이렇게 울퉁불퉁하게 시작되었다.
글 / 최규성 (재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